오늘 기사를 보니 또 한 건의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 그 일을 계기로 군기와 사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느 훈련병의 사고
완전군장을 메고 연병장을 돌며 얼차려를 받던 훈련병이 안타까운 일을 당했다 한다. 훈련병이라면 이제 막 입대한, 그것도 자대도 아닌 훈련소에 입소한 젊은이다. 아직 정식으로 군인도 되지 않은 신분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친구에게 무더위에 연병장을 그것도 완전무장을 하고 돌게 했으니 체력적으로 무리가 갔었나 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군기와 사기
인터넷을 보니 그 정도 군기는 있어야 강한 군대가 될 수 있다는 식의 댓글을 쓴 사람들도 있다. 과연 그럴까? 그 정도의 군기가 있어야 군대가 강해지는 걸까?
내 생각은 다르다. 군대에 사기는 필요하지만 군기는 필요 없다. 예전에 무기보다는 사람이 싸우던 시절에는 군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때도 엄밀히 말하면 군기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군기가 아닌 엄격한 규율이 필요할 뿐이다.
필요한 것은 군기가 아니라 사기다!
군대에는 사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군기가 아닌 규율이 필요하다.
사기는 죽음 앞에서도 돌진하는 임전무퇴의 정신을 갖게 한다. 규율은 아무리 위급한 상황에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지휘관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한다.
그러나 군기는 그렇지 않다. 사기가 높은 군인은 스스로 죽음에 뛰어드나, 군기가 높게 들은 병사는 울면서 죽음에 뛰어 들것이기 때문이다.
사기는 두려움 없이 전장에 뛰어들게 하지만, 군기는 두렵지만 억지로 전장에 뛰어들게 한다. 과연 누가 더 용감히 싸우겠는가?
군기가 중요하다는 사람들은 결국 사기와 군기를 혼동하는 것뿐이다. 만약 군기가 센 군대가 강한 소총 몇 자루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 해적단의 군대가 미군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그들이 아무리 군기를 세게 잡는다 해도 결코 미군을 이길 수 없다.
미군이 군기가 세서 세계 최강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사기가 높고 규율이 살아 있기 때문에 세계 최강인 것이다.
군기 잡으려 하지 말라. 사기를 높여 주려 노력하라. 그것이 진정 훌륭한 지휘관의 자세다.
이순신 장군이 필생즉사, 필사즉생을 외치신 것은 군기를 잡으려 함이 아니라 사기를 높이려 함이었다.